[새로운 공동체 모색 - 부산 시민단체로부터 듣는다] 83. '여성정책연구소' 김해자 이사장
남성 중심의 좌표 흔든 부산 여성계 싱크탱크

2012-08-18 [08:48:52] 
 
여성정책연구소는 지역 이름이 붙지 않는다. 지역 정체성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부산에 사무실을 두고 있지만 전국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선언적 의미가 더 크다.

연구소가 결성된 것은 지난 1992년 7월. 지금은 전국에 유사한 이름의 여성 연구소가 많이 생겼지만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연구소는 고사하고 여성단체 활동도 크지 않았다. 사실 여성정책연구소는 이름이 연구소일 뿐 연구 기능보다 교육에 방점을 찍은 시민단체다. 이른바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지식 교두보인 셈이다.

1991년 지자제 실시 영향 이듬해 출범
여성정치교실·부산여성포럼 등 정례화
市 전담부서 설치·여성기금 조례 '성과'

결성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1991년 지방자치제의 부활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여성도 지방의회에 진출해 여성의 권리를 스스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요." 여성정책연구소 김해자(64) 이사장이 말했다.

하지만 제도, 경험, 재정, 조직 등 모든 분야에서 여성은 불리했다. 설령 공천을 받더라도 선거에서 승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여성의 지방의회 진출을 가속화하기 위해 여성의 정치적 관심을 부단히 촉구할 필요가 있었고, 아울러 여성에게 불합리한 법과 제도,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이론적 갑옷'도 절실했다.

연구소는 이에 따라 출범 초기부터 '교육'과 '연구',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았다. 특히 교육 분야의 '여성정치교실'은 1년에 두 차례 열렸는데 지난달 40회를 치를 정도로 꾸준히 이어졌다. "생각보다 인기가 높아요." 이유가 있었다. 이론 강좌부터 이미지 메이킹, 선거법, 스피치 강화 등 선거에서 당장 필요한 요령을 가르쳤다.

정치 강좌라고 하면 으레 무거운 주제를 떠올리나 실제는 달랐다. 가볍고 탄력적이었다. '재미없는 정치, 한판 붙자' '여러분은 왜 정치를 하려고 합니까?' '젠더 정치란?' 등이 죄다 그랬다.

매년 1차례 열린 '차세대 여성지도자 연수'와 '부산여성포럼'은 젊은 여성을 겨냥했다. 이들에게 정치적 관심을 촉구하고 지도자로 성장할 길을 만들어 주는 데 초점을 뒀다. 이 같은 프로그램을 거친 여성이 연 평균 1천 명. 지난 20년 동안 2만여 명이 정치 의식을 '상향' 조정했다며 그는 웃었다. 그중에는 시·구의회, 구청장, 국회로 진입한 경우도 있었다.


대외적으로 연구소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교육에 비해 연구 기능은 얕았다. 지금까지 발행된 단행본이 '21세기 희망, 여성정치의 전망' '부산여성들의 정치 이야기' '부산 여성의원 의정활동 사례집' 등 4권에 그쳤다.

그러나 논문집인 '여성정책논집'은 지난해 11집이 출간됐다. "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좋은 성과를 낳았습니다." 참여한 지역 학자도 100명을 웃돌았다. 스펙트럼도 넓었다. 그중 지난해 12월 제11권에 소개된 '여성 노점상인들의 일, 가족생활에 관한 연구'(오미영 신라대 강사)는 소외된 여성의 일상을 다뤄 주목 받았다.

이들 연구 성과물은 남성 중심의 좌표를 흔들었다. 부산시장 직속으로 여성정책자문위원회가 설치됐고, 여성정책계라는 전담부서도 생성됐다. 최근에는 연구소가 꾸준히 제기한 여성발전기금이 조례로 설치됐다.

여성정책연구소는 지난 7월 창립 20돌 행사를 치렀다. 이제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재정적 한계의 극복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비영리 민간단체이니 영리 목적의 사업도 할 수 없고요."

김 이사장은 지난 1996년부터 여성정책연구소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 2000∼2002년 소장을 역임했고 잠시 부산소비자연맹 회장, 부산시 여성정책 보좌관을 지냈다. 여성정책연구소로 귀환한 것은 지난 2008년. 그때부터 줄곧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그와 함께 최영은 소장, 문정란 부소장, 김나혜 사무국장이 급여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 형태의 상근자로 일하고 있다. 회원은 800명가량.

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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